블로그에 글을 하도 안썼더니 어색할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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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 무라카미 하루키  (0) 2010.09.23


난 요즘 되도 않게 팡세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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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내가 <루딘>을 읽은것은 15년전, 대학생 때였다. 15년이나 지나서 배에 붕대를 감은 채 이 책을 다시 읽어 보니까, 이전보다도 주인공인 루딘에 대해서 훨씬 더 호의적인 감정이 들었다. 인간은 자신의 결점을 바로잡을 수가 없다. 즉 인간의 성향은 대략 스물다섯 살까지 정해져 버리고, 그 다음부터는 아무리 노력해 보았자 본질을 바꿀 수가 없는것이다. 문제는 외부 세계가 그 인간의 성향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반응하느냐 하는 것으로 압축될 뿐이다. 위스키의 취기도 한몫 거들어서, 나는 더욱더 루딘에게 동정표를 던졌다. - p242

이 세상에서 사라진후에 과연 어떤 세계로 가는가 하는 것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 내 인생의 장밋빛 광채가, 35년 동안에 이미 93퍼센트나 다 써서 닳아 없어져 버렸다 해도 전혀 상관없다. 나는 다만 나머지 7퍼센트만이라도 소중하게 가슴에 품은 채로, 이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무한정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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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2) 201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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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고통을 통과해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한 것에서 자신이 살고 있다는 확실한 실감을, 적어도 그 한쪽 끝을, 우리는 그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의 성질은 성적이나 숫자나 순위라고 하는 고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 속에 유동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인식에(잘 된다고 하는 가정이지만) 다다를 수도 있다. .....그런 인생을 옆에서 바라보면 ㅡ 혹은 훨씬 높은데서 내려다보면  ㅡ 별 다른 의미도 없는 더 없이 무익한 것으로서, 또는 매우 효율이 좋지 않은 것으로서 비쳐진다고 해도, 또한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가령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효능이 있던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p255~257



달리기를 말할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2 - 무라카미 하루키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 - B.F 스키너
욕 그 가타르시스의 미학 - 김열규
맛 - 로얄드 달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나스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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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사회가 학생들의 값비싼 놀이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동안 학생들은 인생을 '놀듯이 보내거나' 또는 인생을 '공부만 하지' 말고 처음부터 끝가지 그것을 진지하게 '살아' 보라는 것이다 -p74

나는 사람의 꽃과 열매를 원한다. 나는 사람에게서 어떤 향기같은것이 나에게로 풍겨오기를 바라며, 우리의 교제가 잘 익은 과일의 풍미를 띠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의 '착함'은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끊임없이 흘러넘치되 아무 비용도 들지않고, 또 그가 깨닫지 못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많은 죄를 덮어주는 은전恩典과도 같은 것이어야 한다. -p84


이미 말한것 처럼 나느 절망을 주제로 한 시를 쓰려는 것이 아니고, 횃대 위에 올라앉은 아침의 수탉처럼 한번 호기있게 울어보려고 하는것이다. 그것이 이웃 사람들의 잠을 깨우는 결과밖에 얻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p121


밭농사가 잘되어 농부의 광을 가득 채우느냐 아니냐는 비교적 중요한 일이 아니다. 금년에 숲에 밤이 열릴것인지 아닌지 다람쥐가 걱정을 않듯 참다운 농부는 걱정에서 벗어나 자기 밭의 생산물에 대한 독점권을 포기하고, 자신의 최초의 소출뿐만 아니라 최종의 소출도 제물로 바칠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p239


내가 알기로, 나무를 베거나 얼음을 잘라내는 일 말고 애 어른을 막론하고 우리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월든 호수에 와서 한나절의 시간을 보내도록 만드는 유일한 용무는 낚시질 뿐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놀란 적이 있다. 대체로 그들은 긴 줄에 꿸 만큼 많은 물고기를 낚지 않으면 운이 없거나 시간 낭비만 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내내 호수를 바라볼 기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p307


연약한 생명체가 펄프처럼 짓눌려 없어지더라도, 예를 들명 왜가리가 올챙이를 통째로 삼킨다든지, 길 위에 거북이와 두꺼비들이 마차에 치여 때론 즐비하게 죽어 넘어지더라도, 자연은 그것을 허용할 여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사고를 당할 위험을 안고 있지만 거기에 대한 해명은 불충분하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 현명한 사람이 여기서 받는 인상은 보편적인 결백이다. 독이란 것도 알고 보면 위험한것이 아니며, 어떤 상처도 치명적인 것은 없다. 연민이란 지지할 수 없는 감정이다. 그것은 임시변통적인 감정임이 틀림없다. 그에 대한 변명을 고정관념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p453


그가 자신의 생활을 소박한 것으로 만들면 만들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욱더 명료해질 것이다. 이제 고독은 고독이 아니고 빈곤도 빈곤이 아니며 연약함도 연약함이 아닐 것이다. 만약 당신이 공중에 누각을 쌓았더라도 그것은 헛된 일이 아니다. 누각은 원래 공중에 있어야 하니까. 이제 그 밑에 토대만 쌓으면 된다. -p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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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아주 오래 전의 일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능한 한 오랜 옛날, 나의 유년 시절 초기, 아니 한층 더 예전 아득한 조상의 위치로까지 거슬러올라가야만 할 것이다.
 

  작가라는 부류는 글을 쓸 때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듯 어떤 인간의 일생을 낱낱이 꿰뚫어 알고 있으며, 또한 신이 자기에게 그러한 사실을 얘기라도 해 준 것처럼 아무 거리낌없이 실상 그대로를 그려내고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나로선 그럴 수가 없다. 여타의 작가들 역시 누구를 막론하고 마찬가지일 테지만, 개개의 작품 모두가 소중하듯 내게도 나의 이야기는 매우 소중한 것이다. 아니,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존재할지도 모르거나 가공적으로 그려낸, 또는 이상적인, 아니면 존재치 않을지도 모르는 가상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살아 있는 한 인간의 실제적인 생애를 그린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한층 소중하다.

 

  현대의 인간들은 지금 실재하고 있는 인간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를 예전 그 어느 시대의 인간보다 더 모르고 있다. 단 한번씩밖엔 존재하지 못하는 자연의 귀중한 실험체인 인간들이 서로를 대량 학살하고 있음을 보더라도 그것은 자명한 일이다. 인간이 죽음의 손에 의해 완전 사멸되어 버리는 것이라면, 한 방의 총탄으로 이 세상과 영원히 작별하게 되는 것이라면, 사실 이처럼 이야기를 글자화한다는 건 정말 무.의.미.한. 시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든 생을 영위해 가며, 누구를 막론하고 독특한 존재인 데다 특수한 한 '점(點)'이라는 면에서, 또한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이 교차되는 지점이고 오직 한번뿐이라는 면에서 큰 호기심을 북돋는 귀중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인간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모두 소중하고 영원하고 경건하며, 또한 어떠한 생애를 살든 자연의 의지를 실현하고 있는 한, 모두가 중요한 존재이므로 누구에게서든 경멸을 당한다거나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인간들 모두가 정신의 일시적 형상이며, 삶을 얻어낸 고통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수난은 실상 모든 인간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사실적 인간이란 대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면, 많은 사람들이 이 느낌을 감지하고 있기 때문에 수월히 죽을 수 있듯, 나 역시 이 이야기를 다 쓰고 난 후엔 좀더 쉽게 죽을 수 있으리라.


  나 스스로 자신이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 이르러 고고하게 서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그 길, 그 방향을 탐색하는 인간이었으며 지금도 역시 그렇다. 그러나 이젠 전처럼 환상이나 책 속에서 뭔가를 찾으려 애쓰진 않는다. 이미 나의 피가 속삭이는 내면의 교훈을 듣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의 이야기는 별로 유쾌하다거나 지어낸 이야기처럼 감미롭지도 못하거니와 조리있게 엮여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건 마치 더는 자신을 거짓되게 하지 않으리라 결심한 자의 삶처럼 부조리와 혼란과 광기, 몽상적인 냄새를 풍기는 것이다.


  인간의 생애란 결국 자기 자신에 귀착하기 위한 긴 여로이며, 그 길을 찾아내기 위한 노고이며, 그 오솔길을 암시하는 데 불과하다. 지금까지 완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었던 존재라곤 전무하다. 그러나 그 사실을 감지하고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있을 망정, 모든 인간은 그 목적지에 닿기 위한 노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들 인간 모두는 원시시대의 끈적거리는 점액과 껍질 따위의 동물적 출생에 의거한 온갖 너저분한 잔재를 죽을 때까지 질질 끌고 다닌다. 끝내 인간화하지 못하고 개구리나 도마뱀이나 개미의 단계에서 성장을 그쳐버리는 인간도 있고, 머리만 인간이고 그 아랫부분은 물고기인 상태의 사람도 있다. 그러나 원천적으로, 인간은 모두 인간화하도록 창조된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은 심연에서 비롯되어 같은 어머니를 통해 출생된 자연의 자식이며, 그 각각이 독자적인 목표를 향해 전진해 가는 낱낱의 실험체이기도 하다.


  각기 독보적 존재이기는 하나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가 있다. 하지만 스스로가 지닌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건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없다.



 


데미안 서문 - 헤세

“그녀는 고통 때문에 모든 사람과 모든 것으로부터 차단된 듯 보였는데 바로 그때, 인간의 영혼은 모두 고독하다는 느낌이 느닷없이 나를 사로잡았다. (……) 갑자기 발 밑에서 땅이 무너지는가 싶더니 완전히 다른 영역에 들어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 5분의 시간에 나를 스친 생각은 이러했다. 인간 영혼의 외로움은 견디기 힘들다. 종교적 스승들이 설파한 것과 같은 지고의 강렬한 사랑 외에는 어떤 것도 그 외로움을 간파할 수 없다. 이 동기에서 나오지 않는 것들은 모두 해로우며 잘해본들 무용하다. 따라서 전쟁은 잘못된 것이고, 사립학교 교육은 옳지 않으며, 폭력에는 반대해야 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각 개인이 가진 외로움의 응어리 속으로 파고 들어가 호소해야 한다.” - 러셀



독서와 생활을 혼동해서는 아니 된다.

전자는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는 뚫고 나가는 것이다.

-김수영

 


1. 거짓말하지말것.

2. 절대 거짓말하지 말것.

3. 그리고 또한. 솔직할것.

 혼돈에 처한 사람들이 흔히 겪게 되는 현상 중 하는 종종 특정 단어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짧은 시기 동안 서로 다른 장소에서 그 단어를 여러 번 듣거나 읽게 된다. 그 단어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을뿐이다. 다만, 사람의 감각들이 열리고 나면 아주 신비하게도 언어의 조각들이 기호들을 끌고 나오기 때문에 갑자기 두드러져 보이게 되는 것이다.  -p 15~16

 부분적으로는 불확실성에 대한 위기감 때문일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할 때 어떤 것이 중요한 부분인지 확신할 수 없고, 명확한 해답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 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거만한 취사선택이라는 비난(신도 아니면서 일개 전기 작가가 어떻게 한 사람의 일생을 좌지우지 할수 있단 말인가?)을 피하려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남겨 둔다. 작품의 가치에 대한 비난이 두려워서라기보다는 씌어지는 대상, 즉 주인공에 대해 어떤 판단이 내려질지가 두렵기 때문이다. 전기가 주인공의 삶의 일부를 담은 것이라면,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들도 당연히 그 삶의 일부일수 밖에 없는것이다. - p296

  누군가가 배리 매닐로의 음악에 빠져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의 성향을 이렇게 짐작할지도 모른다.
......(중략)......
이중에서 어떤것이 진실인가? 이런 도식 속에 진실이 있을리 없다. 그것은 엉성한 이해가 빚어내는 위험한 착각이다. - 이것이 집단 차원으로 확대되면, 우피 골드버기는 총 맞아 죽어야 하고 달라이 라마 숭배자들은 시멘트속에 산채로 매장해버려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선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게임은 자체의 마력이 있는데, 우리가 누군가에 관해 잘 알지 못할수록 그 마력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문학작품속의 다채로운 인물드은 두 가지 차원의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우리는 파머 공주보다는 프루스트 작품의 화자에 관해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러나 인물의 역할로 보면 공주가 훨씬 낫다. 우리는 그녀를 기억할때 한가지 특징만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친절의 전형이 되고자 하고, 이 터무니없는 명령덕에 그에 따르는 모든 행동이 구속을 받는다. 반면 프루스트 작품 속 화자는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한 폭넓은 사고와 인식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지만, 도무지 걷잡을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하다. 화자의 삶의 이야기는 우리가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다. 일상과의 연결고리가 부재하고, 모순되는점 또한 너무 풍부하다. -p306

 내가 공감할 수 없는 이사벨만의 정신세계가 있었고, 서글프긴 하지만 서로에 대한 차이를 존중해주기로 결정했다. 왜 서글픈가? 누군가가 차이를 존중한다고 우쭐대며 말하는 것은 곧 그가 존중하려는 것들에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따라서 그가 솔직하다면 논리상으로는 존중할수가 없다. 상대방의 속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 가치를 어찌 존중할수 있겠는가? -p325

 나의 무지는 부분적으로는 불운의 결과이긴 했으나, 아마도 앎의 곡선을 이루는 자연스러운 경사면의 일부였을 것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때, 우리가 알고 싶은 사실들은 이미 정점에 달한다. 점심과 저녁을 같이 먹으며 우리는 가족과, 동료, 일, 어린시절, 삶의 철학 그리고 그들의 로맨스에 관해 탐구한다. 그러나 일단 서로에 대해 알게 되면 반갑지 않은 단계를 맞는다. 친밀해졌다고 해서 좀더 심오한 주제에 관해 긴 대화를 하게 되는것도 아니고, 서로 상반된 시나리오를 펼치기 일쑤다. 25주년을 맞은 커플은 점심식사를 하며 양털 옷감이나 날씨변화, 찬장에 둔 꽃병 속의 튤립상태나, 침대 시트를 오늘 바꾸는 것이 좋을지 내일 바꾸시는 것이 좋을지에 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 - 미래가 창창한 어떤 커플이라면 그림이나, 책, 음악이나 복지 정책에 관해 신랄하게 의견을 교환할 것이다. 그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수록 알고자 하는 의지는 줄어든다는 역설을. 함께 이야기할 시간을, 사과를 다 먹어치울 만한 시간에서 수도꼭지가 다 말라버릴 만한 시간까지로 무한정 확장한다고 해서 훌륭한 대화 주제를 향해 나아간다는 보장은 없을 것 같다. 서로에 관한 궁금증이 더이상 급격하게 솟아나지 않는 것은 삶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앎이란 그것을 어느정도 소유했는지를 암시한다. 타인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요구를 외면한다. 키르케고르의 아이러니 이론에 대한 그들의 관점처럼 쉽게 다루기 어려운 어떤 것들은 모두 외면당한다. 더욱이 누군가를 더 오래 알수록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들에 관한 자책감도 늘어난다. 주어진 시간 내에 그들의 강아지나 아이, 아버지의 이름이나 직업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제 맥락 안에서는 그들에게 이질성을 드러내 보이는 장치가 돼버린다.  -p 327

 이중에서 더 중요하거나 감동적인 에피소드란 없다. 나의 이사벨은 당신의 이사벨이 아닐수도 있기 때문이다. -p334







개인적으로 키스하기~ 의 책제목은 좀 너무하다 싶었다.
원 제목은 kiss & t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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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07  (0) 2010.07.09

남재일 : 경찰 출입기자를 한다고 들었다. 기자경력으로 모년 편집국장은 제작현장에서는 정점이다. 그리고 경찰기자는 출발점이다.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지내고 다시 경찰기자를 하는 셈이니, 한 바퀴 돌아와서 원점에 선 셈인데 그 동기가 궁금하다. 또 지금 나이에 경찰기자를 하면 뭔가 다른 느낌이 있을 것 같은데..


김훈 : 별다른 이유가 있는건 아니고, 그냥 소설 쓰면서 내가 하는 일이 오래 들어앉아서 책 읽는게 전부다 보니 관념과 추상의 세계에 빠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 현실감 없는 인간이 되지 않나 그런 생각에서, 글건 글 쓰는 데도 위기니까,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현장이 기자밖에 없고, 이왕 기자를 할 바에는 경찰 출입기자를 하자 그렇게 된거다. 그리고 며칠만에 경찰기자가 돼버렸다. 이제 한 4개월은 됐나.. 다시 현장에 나와보니 삶의 바닥은 지극히 난해한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수많은 욕망과 생각의 차이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 삶의 현장이다. 무수한 측면과 측면들이 저마다 정의라고 주장한다. 점점 판단을 정립하기가 어렵다. 어느쪽이 옳고 그르냐는 근원적 문제보다 존중과 타협이 중요하다. 그 어느것도 절대 선이라고 주장할 수 없고, 절대 악으로 반박될 수도 없는 나름의 사연과 치열함이 현장을 복잡하게 만든다. -p246


남재일 : 그러면 거대 담론을 부정하는 것도 헛된 희망을 말하기 때문인가?

김훈 : 거대 담론을 이해할 수 있었던 적이 거의 없다. 몸이 검증안한 언어를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역사적 이런 말들이 잘 안 와닿는다. 어떤 문제든 이런식으로 접근한게 나와는 안맞다. 언어를 사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쓸 수는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언어는 한줌밖에 안된다. 나이가 들수록 쓸수 있는 언어가 점점 적어진다. -p252


남재일 :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에는 노동하지 않고 살고자 하는 인간이 등장한다. 그런 캐릭터는 좌우를 막론한 공공의 적이다. 한마디로 근대의 적으로 규탄받는다. 노동에 대한 생각이 궁금한데....

김훈 : 나는 노동을 싫어한다. 불가피해서 한다. 노는게 신성하다. 노동엔 인간을 파괴하는 요소가 있다. 그러나 이 사회는 노동에 의해 구성돼 있다. 나도 평생 노동을 했다. 노동을 하면 인간이 깨진다는 거 놀아보면 안다. 나는 일할 때도 있었고 놀때도 있었지만 놀떄 인간이 온전해지고 깊어지는 걸 느꼈다.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같이 보이는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거다. 뭘 해먹고 사는지 감이 안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 그런데 노는거, 그게 말이 쉽지 해보면 어렵다. 놀면서 돈 쓰고 돌아다니는 거는 노는게 아니라 노동의 연장이다. 돈에 의지하지 않으면 못 노는 거는 돈 버는 노동세계와 연결돼 있어서 노는게 아니다. 노는 거는 그 자리에 있는 세상하고 단둘이 노는거다. -p254




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 최장집
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화차 - 미야베 미유키
키스하기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 알렝 드 보통
월든 - 헨리 데이빗 소로우
행복의 건축 - 알랭 드 보통
분석심리학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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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07  (0) 2010.06.05
 인간은 전체성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이미 하나의 전체로 태어나며, 따라서 이미 전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일생을 통해 해야 할 일은 이 타고난 전체성을 가능한 한 최고도로 분화시키고, 일관성과 조화가 이루어지도록 발전시키는것이며, 그것이 제각각 흩어져 제멋대로 움직이거나 갈등 구조를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융은 말하고 있다. 해리된 인격은 왜곡된 인격이다. 정신분석가로서 융이 하는일은 환자가 잃어버린 전체성을 되찾고 정신을 강화하도록 도와 장래의 분열에 저항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 p52

 의식에서 무의식으로의 전환에 대해 잘 알려진 예는 어린아이가 부모에게서 독립하기 시작할 때 나타난다. 이때 어린이는 대리 부모에 대한 환상을 갖기 시작하며, 조만간 그것을 교사, 코치, 부모의 오랜 친구 등과 같은 현실의 인물에게 투사한다. 이것은 무의식적 가치가 어떻게 해서 의식적 가치가 갖고 있던 것과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어린이가 부모에게 분리되면 그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가치는 사라진다. 이 가치는 무의식이 되고 공상의 형태로 표현된다. 그 후 그것은 새로운 대상, 새롭다고는 해도 본래의 가치와 비슷한 가치를 보유하고 있는 대상에게서 다시 의식화 된다. -p107

 우리의 모든 문화적인 성취는 무엇을 가져왔는가? 그 두려운 대답이 우리 눈앞에 있다. 인간은 공포에서 해방되지 못했고, 소름끼치는 악몽이 세계를 덮고 있다. 지금까지 이성은 비참하게 패배해왔고, 누구나 피하고 싶어하던 바고 그것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인간은 유용한 도구들을 고안하여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깊이를 알수 없는 나락의 구멍을 뚫어놓았다. 앞으로 인간은 어떻게 될까? 어디서 멈출 수 있을까? 지난번 세계대전 후에 우리는 이성에 희망을 걸어왔다. 지금도 희망을 멈추지 않고 있다. .....(중략)
 누가 혹은 무엇이 원인인가? 그것은 바로 악의 없고 독창적이며, 발명의 재능이 풍부하고, 품위 있어 보이는 이성적인 인간이다. 그러나 인간은 불행하게도 자신이 악마에게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절망적일 만큼 알지 못하고 있다. 더 나쁜 것은, 이런 인간은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기를 전적으로 회피하고 있으며, 우리도 미친듯이 그를 돕고 있다는것이다. .....(중략)
 차라리 전쟁이라도 하는 편이 나을것이다. 전쟁이라면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기때문이다. 전쟁은 항상 누군가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운다. 전 세계 사람들이 두려워 떨며 도망치는 바로 그 일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 p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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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 - 베르나르 베르베르
감염된언어 - 고종석
오라클 성능 고도화 원리와 해법 2 - 조시형


프루스트는 한번은 친교를 독서에 비유하였다. 왜냐하면 두 가지 활동 모두 타자와의 교류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독서에 결정적인 우위가 있다고 덧붙였다.

독서에서 친교는 갑자기 그 본래적인 순수성을 회복한다. 책에는 거짓 상냥함이 없다. 우리가 이 친구들과 저녁을 함께 보낸다면 그것은 우리가 진실로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

인생에서는, 초대를 거절하면 소중한 우정이 앞으로 잘못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는 친구의 정당하지 않지만 회피할 수 없는 예민한 감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 위선적인 식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책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솔직해질 수 있는가? 독서할 때는 적어도 우리가 원할 대만 책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고, 지루한 표정을 지을 수도 있으며, 필요할때 대화를 중단할수도 있다
- p174

이것은, 무언가가 물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결코 그것에 주목할 수 있는 이상적인 상황은 아님을 제시한다. 사실 존재란 바로 우리가 그것을 무시하고 간과하게 만드는 요소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각적 접촉만으로 모든일을 다 했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 p224

평생을 문학에 몰두한 사람으로서 프루스트는 책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때 생기는 위험들, 아니 책을 물신적으로 숭배하는 태도를 취할 때 생기는 위험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 물신 숭배적 태도는 겉으로는 책에 대해 존경을 표하는것 같지만 실제로는 문예창작의 정신을 희화화화는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쓴 책과 건전한 관계를 맺고 싶으면, 그것들이 주는 이익만큼이나 그것들의 한계도 이해해야한다.
- p237

그는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깨닫기 위해서는 대가가 느꼈던 것을 자신 속에 다시 그려 보려고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 p244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스럽게 책을 읽고 책이 우리에게 주는 통찰을 환영해야 하지만, 우리의 독립성을 포기하거나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의 연애생활이 가지는 미묘함을 은폐해서는 안된다.
- p249

(독서를) 학문 분과로 만드는 것은 단지 '자극'에 불과한 것에 너무 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독서는 정신적 삶의 문턱 위에 있다. 그것은 우리를 정신적 삶으로 인도할 수 있지만, 정신적 삶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가장 훌륭한 책들조차도 결국에는 내팽개쳐야만 하게 마련이다.
- p270 마지막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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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독서의 견해는 (혹은 알랭드보통의 그것은) 무섭도록 나와 일치하며.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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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지메 씨. 잘들어요" 하고 한참 후에 시마모토가 말했다.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잘 들으세요. 아까도 말한 것처럼, 내게는 중간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아요. 내안에 중간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고, 중간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는, 중간 또한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당신은 나의 전부를 취하든지. 아니면 취하지 않든지. 그 어느 쪽 길밖에 없어요. 그것이 기본적인 원칙이에요. 만약에 당신이 지금 이대로의 상황을 지속시켜도 상관없다면, 그럴수는 있어요.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가능한 일은 다 하겠어요. 나는 당신을 만나러 올 수 있을때에는 만나러 와요.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나 나름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되요. 하지만 만나러 올 수 없을때에는, 올 수 없어요. 언제라도 내가 그러고 싶을때 만나러 올 수는 없어요. 그것은 아주 확실해요. 그렇지만 만약 당신이 그런것은 싫다, 두번 다시 내가 어디로 가는 것을 윈치 않는다고 한다면, 당신은 내 전부를 취해야만 해요. 나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부. 내가 질질 끌고 있는것이나. 내가 껴안고 있는것도 전부. 그리고 나도 아마 당신의 모든것을 취할거에요. 전부요. 당신은 그걸 알아요?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도 알고 있는 거에요?"

p215-216
--

개가 없는곳에는 개집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개밥이라던가 개샴푸같은것도.
"중간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는, 중간 또한 존재하지 않아요."라는 말.

나는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한 여자아이에게 위와 비슷한 말을 한적이 있었다. 그때 그 아이에겐 어떻게 전달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뭐. 내가 말주변이 좀 없긴하다... 나는 나 나름대로의 설명을 한것 같았고. 아마 저 대사와 비슷한 냄새를 풍기려 애썼을게다. 아마도.
그리고 그 아이는 한참을 생각하고 듣고 있다가. 나에게 한 마디 말을 해주었다.
그 말은 나를 반성하게 했고, 그 말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솔직히 지금도 위와 같은 생각 전부를 떨쳐낸거 같진 않다. 하지만. 삶이란 어느 중간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것이고, - 특히 좋아하는 사람과에 관계에선 말이다. - 내가 생각하던 극단적인 취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것도. 이제는 조금 알것같기도 하다. 하지만. 난 여전히 무섭고 두렵다. 그래서 그런생각들을 하게 된다.

개가 없어도 개집은 살수 있고, 피아노가 없어도 스코어는 살수 있고,
특정된 누군가를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마음은 항상 조금은 열어둘수 있는것.
그런것들이 필요한걸까.

"그러니까 당신은 나의 전부를 취하든지. 아니면 취하지 않든지."

무서운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원하고 있는 것같다.
"전부 아니면 완전이 비어있는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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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나약함을,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임기응변식의 보강을 해가며 얼버무리는 사이에 덕지덕지 기워댄 누더기 같은 자아가 형성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이로제는, 그녀의 생명력의 울부짖음이었던 것이다. -p16

시간은 하루를 마감하며, 어떤 거대하고 정겹고 두려울 만큼 아름다운 것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무대에서 사라져간다는 것을 알았다.
 실감했다.
 거리로, 내게로 스며든다. 부드럽게 녹아, 똑똑 방울져 떨어진다.
....
이렇게 박력 있는 저녁노을이라도 보지 않는 한, 좀처럼 당연한 것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들이 백만 권의 책을 읽고, 백만 편의 영화를 보고, 애인과 백만번의 키스를 하고서야 겨우,
<오늘은 한번 밖에 없다>
는 걸 깨닫는다면, 단 한 번에 깨닫게 하고 압도하다니, 자연이란 그 얼마나 위대한가. 구하지도 않는데, 그냥 놔두면서 알게한다. 누구에게든 구별 없이 보여준다. -p 176

여름.
매미 울음소리. 나는 어린아이이고 집에 있다. 다다미에 엎드려 자고 있다. 아버지의 맨발이 눈앞을 가로지른다. 검은발, 짧은 발톱. 저쪽에서는 여동생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발, 창밖은 녹음. 동생의 뒷모습. 두 갈래로 묶은 머리.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 사쿠미가 잠들었다는데. 뭐 좀 덮어주지 그래. 어머니가 대답한다. 지금 튀김 만드느라 안 들려요! 부엌에서는 튀김을 튀기는 소리가 난다. 냄새도 난다. 긴 젓가락을 든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인다. 아버지는 할 수 없이 이블을 들고 와 덮어준다. 동생이 돌아보며, 언니 안자요, 라고 말한다. 웃는다. 그리운 뻐드렁니. Feed, 바로 이런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내몸은 기억하고 있다. 모든것이 상실되어도, 이렇게 변함없이 기억하고 있다. 모두들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새겨져 있다. 자기가 부모가 되기 전에는 좀처럼 떠올리지 않지만, 기억은 살아 있다. 죽을 떄까지. 설사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어서, 가정이 없어지더라도, 자기가 할머니가 되어도. -p268

.... 당신은 구제할 길 없이 굶주려 있고 고독합니다. 당신이 머리를 다치기 전에 가족이 많이 죽었죠. 그래서 그 다음은 당신이 죽을 차례였던 겁니다. 그렇게 되기 쉬운 핏줄이에요....
하지만 당신한테는 뭔지 모르겠지만 플러스 알파가 있어서, 바로 그게 아슬아슬하게 당신의 목숨을 연장시킨겁니다. 나는 운명론자도 아니고, 점성술에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이 들어요. 머리를 다친 후의 당신의 인생은 새하얀 백지, 덤, 뜻하지 않은 선물, 아무런 시나리오도 없고, 그리고 당신은 그렇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로워 지거나 허무해지지 않도록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요. 말할 수 없이 고독합니다. 애인은 꽤 머리도 좋고,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당신의 고독을 감싸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당신 개인의 내면적 혼란에 있어서는 그 존재도 단순한 위로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정한 절망에 이르기는 간단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금 당신의 전부입니다. 한번, 죽었어요. 이전의 인생에 마련돼 있었던 꽃과 열매는 모두 변화했습니다.
...
한밤중에, 자신이 누군지 몰라 잠에서 깨어나는 일이 있죠. 그게 당신입니다. 몹시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만남도, 헤어짐도 지나갈 뿐, 보고 있을 수밖에 없어요. 해맬 수밖에 없어,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아마 죽어서도. 그렇다는걸 깨닫지 않도록, 내면에서는 굉장한 혼란과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이렇게 버티고 있다는 걸 칭찬해 주어도 좋을 만큼
그게 나인가요?
나는 말했다.
고독하기는 모두가 마찬가지이고,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늘 관객을 필요로 하니까 -p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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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자신이 만든 이미지의 최면에서 쉽게 놓여나지 못한다. 표면적으로 이 세상은 참으로 드라이하고 효율적인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아무리 낭만적인 향수 광고와 영화 필름에 열광하는 사람도 현실에서 가난한 상대와는 결혼을 고려하지 않고, 가난한 소녀가 잘생기고 부유한 남자와 진실한 사랑을 나눈게 되는(이것이 중요하다. 대중의 신분상승에 대한 대리 만족의 욕구를 '진실한'이라는 형용사로 위장하고 있다) 신데렐라 타입의 만화와 드라마가 인기 있어도 현실에서 정말 예쁜 여자아이는 공장에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다 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이 만든 '이 세상' 이라는 소설의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으려면 우선 세상과의 현실적인 접촉을 최소화 해야 한다. 그리고 전화로 목소리를 알고 있는 사람에 관해서 글을 쓰면 된다. 그 사람의 성장 과정, 부모의 직업, 학교 다닐 때의 성적, 친구들의 성격, 혈액형과 별자리 좋아하는 취향의 여자(혹은 남자), 정치적 견해, 그리고 앞날에 일어날 일들.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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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완벽하지 않다. 나는 눈이 나 얼음을 사랑보다 더 중하게 여긴다. 동족 인류에게 애정을 갖기보다는 수학에 흥미를 가지는 편이 내게는 더 쉽다. 그렇지만 나는 삶에서 일정한 무언가를 닻처럼 내리고 있다. 그걸 방향 감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자의 직관이라고 해도 된다. 뭐라고 불러도 좋다. 나느 기초 위에 서 있고, 더이상 나아가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내 삶을 아주 잘 꾸려나가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절대 공간을, 적어도 한번에 한 손가락으로라도 붙들고 있다. - p68

별명이 고정되는 것은 그 별명이 심오한 진실을 잡아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이사야의 위엄이 그 진실이었다. 그처럼 자족진 사실과 관련이 있는것. 그 애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 - p130

모리츠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했다. 그는 분자까지도 광활한 공허 속에 빠져버린 사람과 절망적인 사랑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사랑은 희망을 포기해버렸다. 하지만 그 희망은 그의 기억속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바로 그 기억이었다. 그는 온갖 어려움을 다겪고 나늘 여기로 데려왔으며, 내 어머니었던 여자와 내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질을 관찰함으로써 영원한 유예를 찾기 위해 수년간 적대감의 사막속에서 끝없는 거절을 참아왔던 것이다. -p152

내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게 되었을 떄, 나는 어떤 순간도 마지막이 될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의 어떤 것도 단순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 통로가 될 수는 없다. 마치 남겨놓고 가는 유일한것이 양 매 걸음을 떼어야 한다. - p180

그리고 나서 나는 떠났다. 머무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때문도 아니고, 나 때문도 아니다. 더 머무른다면 나를 잡아주는것. 몇 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떤 것, 내가 더이상 깨닫지 못하는듯 싶은것, 나에게 낯선것에 대한 존경심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227

그는 내가 코트 입는것을 도와주었다.
"아내는 절대 애들을 못 때리게 해서요."
"그린란드에서도 애들을 때리지는 않아요"
레어만은 실망한 듯 보였다.
"그렇지만 때리고 싶은 기분이 든다는 건 빌어먹도록 인간적이지 않습니까?"  - p256

대학때 교수들은 반복해서 우리에게 기하학적 개념의 실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했다. 교수들은 물었다. 이불완전한 외부 세계 속에서 구축될수 없다면, 어디서 완전한 원, 진정한 대칭, 절대적 평행을 찾을수 있을까?
나는 그런 질문에 한번도 대답하지 않았다. 교수들은 내 대답이 얼마나 자신에 차있는지를, 그리고 그 대답이 가져오는 엄청난 결과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하학은 우리 의식 속에 고유한 현상으로 존재한다. 외부세계에는 완벽하게 형성된 눈의 결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의 의식속에는 티끌 하나 없이 반짝이는, 완벽한 눈에 대한 지식이 있다.
 그러고도 힘이 남아 있다면, 더 멀리, 기하학을 넘어 무한에까지 뻗어가며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빛과 어둠의 통로로 깊숙히 들어가 볼 수 있다.
  그럴 힘이 있다면 할 수 있는 일들은 너무나 많다. -p402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대단히 과장된 얘기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라리는 두려움 45퍼센트와 이번에는 그 두려움이 무색하게 되리라는 광적인 희망 45퍼센트, 거기에 소박하게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여린 감각10퍼센트를 더하여 이루어진다. 나는 더이상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내가 더이상 볼거리에 걸리지 않는것처럼.
그렇지만 물론, 누구나 사랑에 압도될 수는 있다. .. 나는 내 마음에 승낙을 내려놓고 내 몸이 그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과 내가 진정으로 알아차리기 이전의 그의 모습까지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나는 그의 고득을 안다. 더듬거리던 습관, 포옹, 개성의 거대한 핵심에 대한 깨달음을 기억한다. 이런 이미지들이 지나치게 갈망을 발산하기 시작하면 나는 이들을 잘라버린다.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사랑에 빠진 적이 없다. 그러기에는 지나치게 명확하게 사물을 바라본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광기의 한 형태다. 증오, 냉담, 분노,중독, 자살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간혹, 자주는 아니지만 때때로 나는 인생에게 사랑에 빠졌던 때를 떠올린다. 그 일이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것이다. -p442

사람들은 과도기 동안 망가져간다. 스코레스비순에서는 겨울이 여름을 잠식해갈 때 서로 권총으로 머리를 쏘기도 했다. 일이 잘되어가고 있을 때, 균형이 성립되었을 때 타성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거은 새로운 것이다. 새로운 얼음, 새로운 빛, 새로운 감정. -p460

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냉담해질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긴장할 수는 있겠지만 냉담해질 수는 없다. 삶의 본질은 온기다. -p445

"죽음은 언제나 낭비일 뿐이야. 하지만 때때로 사람들을 깨우는 유일한 방법이 되기도 하지. 보어는 원자 폭탄 제작에 참여했지만 그게 세계평화를 진작시킬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율리아네가 이전에 술에 취하지 않았을때 말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녀는 3차 세계대전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인류는 새로운 전쟁을 겪어봐야 분별력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이 순간 내 반응은 그떄와 마찬가지다. 나는 그 논지에서 광기를 읽었다.
"사람들을 가능한 한 타락시키면서 사랑을 느끼라고 강요할 수는 없어." -p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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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페터회
적의 화장법 - 아멜리 노통
론리 플래닛 스토리 - 토니흴러, 모린흴러
내안에 남자가 숨어있다 - 배수아
쇠못 살인자 - 로베르트 반 홀릭


발췌독, 미시적으로는 선순환일지 모르나.. 거시적으론 분명 악순환이다.


세상끝에서 삶을 춤추다 - 최인혁 외 10
장미비파레몬 - 에쿠니 가오리

장미- 는 선물로 주려고 산건데.. 이미 가지고 있었다ㅠ 있던건 주고 그래서 지인책을 다시 선물받음!




사랑에 빠지면 고통이 시작된다. 사랑의 고통이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의 몫이다. 내 경우에는 누가 누구를 더 많이 사랑했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더 많이 사랑했던것 같지만 겉으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내게 잘했다. 문제는 그녀의 사랑이 아니라 그녀의 몸이었다. 몸이라고 하니 이상한가? 그러나 어른의 사랑이란 그런것이다. .. 그런 어른의 사랑에서는 누가 누구를 얼마나 더 사랑하는가의 문제만큼이나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가 중요할수 밖에 없다. 그 잔인한 문제는 사랑도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에 관한 한 고통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 p50

아버지를 싫어하는 세상의 아들들이란 능력이 닿는 한에서 아버지에게 저항하지만 결국 닮게 마련이다. 그것도 자신이 싫어했던 부분만. - p58

"나이가 좀 들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알게 된 게 하나 있는데, 원래 그런사람이고 생각해버리면 모든게 간단해지는 것 같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원래 그런 사람이려니 하면 그만이거든. 마찬가지로 누가 나에 대해 뭐라고 해도 나는 원래 그런사람이야 하고 생각하면 그만이야. 내가 잘못한 거라면 고쳐야겠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내가 잘못해서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싫어서 뭐라고 하는 게 대부분이야.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고 그걸 참을 수 없어서 덕훈 씨가 헤어지자고 했던 거잖아. 근데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덕훈씨는 원래 그런걸 싫어하는 사람이고. 우리는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인거야." - p64

결혼이란 뿌리를 내리는것이다. 연애가 이벤트라면 결혼은 일상이다. 연애할 때는 주로 그녀의 젖가슴과 사타구니에만 관심이 집중된다. 결혼하고 나면 연애할 때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된다. 아내의 허벅지를 베고 누우려 들면 아내는 귀이개를 가져온다. 아내의 손에 귀를 맡기고 아내의 무릎을 어루만지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성욕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스킨십이 얼마나 따뜻한 느낌인지. - p123

삶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란 없다. 다만 견딜 수 없는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 p217

의심이란 그런것이다. 행동을 의심하게 되고 행동에 꼬투리 잡을것이 없으면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의도마저도 결백이 입증되면 그다음에는 무의식을 의심하게 된다. 무의식을 의심해서 어쩌겠다고? 뭘 어쩌기 위해 무의식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의심의 메커니즘이 그런것이다 - p 226

어떠한 종류의 사랑이건 간에 사랑이란 그 자체로 아이러니다. 왜 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너이고 네가 나였던 아주 짧은 시기가 지나가고 나면 사랑은 숨겨 놓았던 독을 사방에 풀어 놓는다. 그리하여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정작 사랑했던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 - p241

내공은 한쪽이 찌그러졌다.
어렸을 적부터 난 누르고 또 눌렀지만
내 공은 늘 한쪽만 둥글어지려 한다.
                                                    - 권터 그라스. 공은 둥글다.

누구나 조금씩 그러하듯이 내 삶도 어딘가는 찌러졌다. 아내의 두 번째 결혼은 내 삶을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랗게 찌그러뜨렸다. 새로 태어날 아이가 찌그러진 부분을 다시 동그랗게 만들어 줄수 있을지, 혹은 찌그러진 부분을 더 크게 찌그러뜨릴지, 그것도 아니면 이것저곳 마구 눌러 대서 도저히 공이라고 부를 수 없는 형체로 만들어 버릴지 알수 없는 일이다. 기대와 불안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날들이 빠르게 흘러갔다. - p261


여기에서 지적해야 할 점은, 내가 일본 만주군 출신인 박정희의 이념과 이상을 단순히 일제 어용 이데올로기의 '아류'나 '복제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푸코가 제시한 '계보'의 개념은 위계질서적인 의미의 '베끼기-재현'이 아니다. 푸코는 차후의 또다른 변형과 잠재적 재생 가능성을 보유한 '원형'의 독자적인 '화현'을 현실 변화의 주요 원칙으로 본다. 예를 들어서 전통시대의 오가작통과 일제시대의 애국반 이라는 계보를 지닌 북한의 인민반과 남한의 반상회의 다양한 변천을 보면 '아류'개념의 지나친 단순성을 절감할수 있다. -p.39

... 남에게 정신적인 가르침을 줄 수 있으려면 그 남과 일단 생각의 범위가 달라야 하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정신생활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성' 과 '개인주의'를 표어롤 내세우는 그들의 생각은 사실 놀랍게도 천편일률적이다. - p.59

...제도에 대한 불신 못지 않게 대인관계에서 드러나는 근원적인 경계의 자세가 나를 매우 놀라게 하였다. 대인관계에 대한 보편적인 전제는 "모든 사람이 타인과 관계하는 이유가 본인 이득의 극대화" 라는 '삼국지'를 생각하게 하는 '생활의 지혜'였다(동양 고전을 일반적으로 많이 망각한 한국에서, '삼국지'가 유독 인기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도 있지 않을까) 따라서 소위 삼연이 닿지 않거나 특별한 '결속감 구축 의례'를 거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처음부터 무조건 남에 대해 친절하고 이타적인 자세를 갖추는 것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중세 유럽 혼란기의 무장된 기사들이 초면 인사를 했던 것처럼, 상대방의 나이와 신분, 사회 관계망, 숨은 의도들을 조심스럽게 파악한 뒤에 이에 따라서 친절과 협조의 정도를 맞추는 것이 통례였던것 같다. 대(對) 사회, 대인관계의 근본 전제인 신뢰가 심하게 결여된 이러한 사회를 '위험사회(risk society)'라고 명명하는 학자도 있지만, '불신사회'가 더 적합하지 않나 싶다. - p.171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않는, 또는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존재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일단 표현체계가 잡히면, 우리는 그 표현 대상물의 존재를 별로 의심하지 않는다. '민족사' 책이 서점과 학생들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나면, 불변하는 '민족'이 주체가 된 단선적인 '국사'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탈출할줄도 모르는 언어의 포로들이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일상 언어의 늪을 벗어나라면, 한 가지 아주 좋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바로 무슨 일을 접하든 그 이면을 생각하는 것이다. 역사에서 이것은 양쪽의 고통을 아울러 생각해서 자기 고통으로 알라는 것을 의미한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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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인터뷰 : http://blog.aladdin.co.kr/pop/3059722

평소 잘 안보는 section에서 책 4권 발견..
OTL..


오빠가 돌아왔다 - 김영하
당신들의 대한민국 1/2 - 박노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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