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지독한 공포입니다. 영원의 숲에 들어갔던 사람들 중엔 분명히 돌아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사고도 당하지 않고 건강하게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라져갑니다."
"사라지다니…"
"잊혀진다고요! 하핫!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제레인트는 상쾌하게 웃었지만 그의 눈은 무서운 공포를 나타내고 있었 다. 빠르게 깜빡거리는 그의 눈 주위로는 지독한 열기가 끓어오르는 모 양이다. 제레인트는 무서운 속도로 말했다.
"사라지고, 잊혀집니다. 어쩌다가 부모가 그를 못알아봅니다. 자식들이 그를 못알아볼 경우도 있지요. 그 주위의 사람들은 서서히 그와 함께 했 던 옛추억을 잊어갑니다. 왠지 주위에 있는데도 시선에 잘 들어오지 않 습니다. 그에게 완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몸이 없어진다거나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의 방에 있는 기둥의 나뭇결은 어떤 모양이지요? 거의 신경쓰지 않으면 모릅니다. 바 로 그런 일이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나는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도 안돼!
"이해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됩니다. 영원의 숲에 들어갔 다가 돌아온 남자가 있습니다. 그에겐 사랑하는 애인이 있습니다. 이야 기를 나누죠. 별로 달라진 것도 느끼지 못하지만 어느 샌가 서서히 기억 들이 사라져갑니다. 남자가 묻지요. '그 때 같이 거닐었던 길 기억나?' 여자는 '아니, 모르겠어. 그게 언제였지?' 라고 대답합니다. 이 정도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요? 하! 예. 그저 사소한 추억에서부터 시작 됩니다. 그러다가 차츰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이 더 심해지기 시작합니 다."
제레인트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우리들의 숨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그의 생일은 언제더라? 뭘 좋아하더라? 첫만남은 언제였지? 그리고 다 른 중요한 일들이 그녀의 앞을 막습니다. 왠지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 어들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느끼지 못하지요. 매일 만나지던 것이 일주 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어듭니다. 그러다가 완전히 잊어버리 게 됩니다. '그 사람이 누구였지?' 이렇게까지 되어버립니다. 그 남자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심지어 그 자신까 지도!"
카알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제레인트를 바라보았고 제레인트는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 자신도 자신을 잊어갑니다. 어릴 때 친구의 얼굴 이 떠오르지 않게 되다가, 차츰 주위의 사람들을 잊어가게 되고, 끝내 자신의이름도 기억나지 않게 되고, 자기가 존재하는 것인지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분명히 존재하는데,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렇게 없어집니다! 아무도 그를 모르고, 심지어 그 자신도 그를 모르는데 어떻게 그가 존재하는 사람이 됩니까? 그러다가 아주 드물게, 거의 일어나지 않는 행운을 통해 누군가가 간신히 그의 기 억을 떠올립니다. '이봐, 어떤 친구가 있었는데, 그 왜 있잖아?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아.' '누구 말이야?' 이렇게 되어버리면 이제 그는 이미 세상에 없는 것이 됩니다. 아무도 몰라요."
카알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제레인트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되죠. 절대로 말이 안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됩니다."
"잠깐, 이상한데요. 그렇게 아무도 모른다면 그가 사라졌다는 것은 어 떻게 안다는 말입니까?"
"기록은 없어지지 않으니까요."
"예?"
"기억은 없어집니다. 하지만 기록은 남아요. 아까 그 남자의 예를 듭시 다. 그 애인이 일기를 썼다면? 그 기록은 남아있습니다. 그가 완전히 사 라진 다음, 그 애인이 어느날 옛 일기를 뒤적거립니다. 그리곤 처음 보 는 이름이라든지 도저히 기억도 안나는 사건들을 읽으면서 당황하게 되 지요. 이게 도대체 뭐야? 그제서야 우리는 알아차립니다. 또 누군가가 사라졌던 것이구나. 어쩌면 그 사람은 나의 부모이거나 형제, 혹은 내 자식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제레인트는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하하하!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조차도 모릅니다. 어쩌면 300년 전 영원의 숲이 처음 생겼을 때 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분명 그런 이상한, 믿을 수도 없는 일이 일어 난다는 것을 알게 되고부터 우리는 영원의 숲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혹 누군가 배짱있는 사람들이 계속 들어갔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는 어쩌면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모르는 친지들로 둘러쌓인 셈이지요. 하하!"
"그런… 그런 일이 왜 다른 곳에 알려지지 않았…"
"모르니까요!"
"예?"
"모르니까요! 우리는 모릅니다. 누가 사라졌는지. 원래 있었는지조차 모른단 말입니다! 누군가는 사라졌습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모 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 스스로 영원의 숲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꺼리게 되었습니다. 아예 다가가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른 나라에 는 알려지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일스의 사람들은 전부 다 압니다. 혹시 다른 나라의 여행자들이 찾아왔다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영원의 숲 에 들어갔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들 역시 사라졌을 겁니다. 그러니 누가 압니까? 우리들도 기록에 의지해서, 존재하지도 않은 사람들의, 있 지도 않았던 사람들의 당황할 정도로 낯선 기록에 의지해서 간신히 알아 차리는 일인데 어떻게 다른 곳에 알립니까?"
한번쯤은 읽어보셨을 만한 "드래곤 라자 - 이영도" 님의 작품입니다. 이걸 쓴게 98년도였으니깐 벌써 10년이 다되어가네요.
라자 전체중 통들어 가장 좋아하기도 하면서 가장 싫어하기도 하는 대목입니다. 대목이라 하기엔 조금 글이 길어보이는 군요 =)
마음이 조금 일렁였던지라, 지나간 편지를 읽어보았습니다. 사실 남자가 편지받을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군대" 밖에 없지요. 20년 넘게 혼자였던 저도 "여자에게 편지"라는걸 받아볼 기회가 있었으니 말이죠. 그런면에서 군대도 그렇게 나쁜것만 있는건 아니였어요. 당연 다시가라면 안갑니다. 크크-
군시절이 참 힘들긴 했었어요. 저의 윗고참들이 들으면 웃을일이지만, 사실 나름 힘든거라는건 타인이 이해못하는 범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크- 그 장소에서 그 시간에서 저는 저를 잊지 않기위해 부던히도 힘써야했었습니다. 저는 그다지도 강한 사람이 아니였기 때문에, 적지않은 양의 편지들과 전화를 해댔었지요. 물론- 수신자 부담입니다만;
그건 마치 망망대해에 병편지를 띄워보내는 기분이었습니다. 혹은 소련,지금은 러시아가 되어버린 첫 우주선 스푸트니크 1호의 기분이 이랬을까요. 뭐 우주선에게도 감정이라는게 있다면 말이죠.
어찌되었든- 편지를 통해 그들의 일상들을 볼수 있었지요. 그건 흥미로운 일이었으나 저에게 있어서 또 다른 자책감을 낳게 했습니다.
그들은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증명해나가고 있었습니다. 뭐 경제적으로 돈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떠나, 그들은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하고 있었고, 결과물을 내고 있었죠. 참 그때는 그게 부러웠었습니다. 근데 2년이 지난 지금도 부러워 하고있습니다.
저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죠. 삶의 증명이란, 저에게만 이다지도 어려운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라자내용이랑 전혀 딴소리하고 있다구요?? 크크- 뭐 조근조근 설명을 보태보자면,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사람들의 관심을 원해요. 사실 관심이라고 하면 조금 어리광같아보여서, 관계라고 해두지요. 그런데 저는 이율배반적으로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질 않아요. 그런 두터운 신뢰라던가- 우정, 사랑같은것들이죠. 후자쪽이 저를 변화시키고 더욱 높은곳으로 올려다줄, 그런 것들이지만. 그들이 한번씩 손을 내밀때마다 저는 그들을 쳐내고는 했지요. 그리고 거만하게 웃었습니다."네까짓게 뭐라고 날 동정해" 라구요. 그리고는 뭐 있습니까. 골방에 혼자 쳐박혀 우는거지요. .... 사실 정말로 울진 않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