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일 : 경찰 출입기자를 한다고 들었다. 기자경력으로 모년 편집국장은 제작현장에서는 정점이다. 그리고 경찰기자는 출발점이다.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지내고 다시 경찰기자를 하는 셈이니, 한 바퀴 돌아와서 원점에 선 셈인데 그 동기가 궁금하다. 또 지금 나이에 경찰기자를 하면 뭔가 다른 느낌이 있을 것 같은데..
김훈 : 별다른 이유가 있는건 아니고, 그냥 소설 쓰면서 내가 하는 일이 오래 들어앉아서 책 읽는게 전부다 보니 관념과 추상의 세계에 빠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 현실감 없는 인간이 되지 않나 그런 생각에서, 글건 글 쓰는 데도 위기니까,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현장이 기자밖에 없고, 이왕 기자를 할 바에는 경찰 출입기자를 하자 그렇게 된거다. 그리고 며칠만에 경찰기자가 돼버렸다. 이제 한 4개월은 됐나.. 다시 현장에 나와보니 삶의 바닥은 지극히 난해한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수많은 욕망과 생각의 차이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 삶의 현장이다. 무수한 측면과 측면들이 저마다 정의라고 주장한다. 점점 판단을 정립하기가 어렵다. 어느쪽이 옳고 그르냐는 근원적 문제보다 존중과 타협이 중요하다. 그 어느것도 절대 선이라고 주장할 수 없고, 절대 악으로 반박될 수도 없는 나름의 사연과 치열함이 현장을 복잡하게 만든다. -p246
남재일 : 그러면 거대 담론을 부정하는 것도 헛된 희망을 말하기 때문인가?
김훈 : 거대 담론을 이해할 수 있었던 적이 거의 없다. 몸이 검증안한 언어를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역사적 이런 말들이 잘 안 와닿는다. 어떤 문제든 이런식으로 접근한게 나와는 안맞다. 언어를 사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쓸 수는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언어는 한줌밖에 안된다. 나이가 들수록 쓸수 있는 언어가 점점 적어진다. -p252
남재일 :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에는 노동하지 않고 살고자 하는 인간이 등장한다. 그런 캐릭터는 좌우를 막론한 공공의 적이다. 한마디로 근대의 적으로 규탄받는다. 노동에 대한 생각이 궁금한데....
김훈 : 나는 노동을 싫어한다. 불가피해서 한다. 노는게 신성하다. 노동엔 인간을 파괴하는 요소가 있다. 그러나 이 사회는 노동에 의해 구성돼 있다. 나도 평생 노동을 했다. 노동을 하면 인간이 깨진다는 거 놀아보면 안다. 나는 일할 때도 있었고 놀때도 있었지만 놀떄 인간이 온전해지고 깊어지는 걸 느꼈다.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같이 보이는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거다. 뭘 해먹고 사는지 감이 안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 그런데 노는거, 그게 말이 쉽지 해보면 어렵다. 놀면서 돈 쓰고 돌아다니는 거는 노는게 아니라 노동의 연장이다. 돈에 의지하지 않으면 못 노는 거는 돈 버는 노동세계와 연결돼 있어서 노는게 아니다. 노는 거는 그 자리에 있는 세상하고 단둘이 노는거다.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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