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글을 예전에.. 아주 예전에 쓴글이 있었다. 대충 휘갈겨 써놓고 실수로 어떤이유로 삭제를 하거나 유실을 하거나 기억속에서 잊혀져 버려서... 아마 하드안에서 영영 사라져 버린거 같은데. 왠지 아쉽다. 블로그에 그 글이 올라와 있을줄 알았는데 없어져 버리다니..
1.1
상당히 게을러 졌다라는 상태가 지속 되다보니 말 그대로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의 상태가 되어버린거 같다. 나의 지인에게도 미안할 따름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뭐 나의 선택이니.. 욕을 들어도 ㅆ.. 암튼. 간간히 고민은 하고 살고 있다. 발현되지 않을뿐이지. 아 그게 그건가.ㅋ
2.
스스럼없음과 예의 없음을 다소 헛갈려 하는 분들이 요즘 부쩍 옆자리에 많아지셔서 고민이다. 뭐 스스럼없다라는 말 자체가 예의없음이라는 뜻도 내포하긴 하지만. 여튼. 기본적인 예의정도는 지켜야 되는게 아닐까.. 우리가 그렇게 막역한 사이도 아니고 말야.
2.1
사실 2.의 문제는 그 원인이 요즘 내 정신상태에 있기도 한데.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군다는거에 이유가 있기도 하다. 사사건건 마음에서 부딪히는 일들이 너무 많아.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기도 하고, 뭘 "생각" 하는것도 힘든 상황이 그다지도 많이 연출 되는지라. 내 삶이 참 쪼잔하고 쪼그라드는게 밖으로 이런식으로 표출되는구나 하고 생각은 한다. 사실 그것도 다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린뒤에 알게되는 면인지만.
2.1.1
만성적이 되어가는것. 참 그렇게 되어가는 과정조차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는것은 무서운일이다. 지난 잡설에서도 몇번 언급을 하였지만. 난 이미 죽은 인간이 되어버린것 같다.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며, 그저 이것이 항상 옮다고 믿어버리는 그런 시시하고 죽은 인간이 되어버린. 어쩌면 돌이킬수 없을것 같기도 하다. 마치 지금 쓰는 글조차도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상태의 사람 같다. 내가 제정신이 되어 다음번 글쓰기 시간은 언제쯤이려나.
3.
이번 하루키의 책 "색채가 없는~"은 기존 1q84에 조금 실망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그리고 상실의 시대를 무척이나 감명깊게 읽었던 사람이라면, 조금은 추천해줄수 있는 책이다. 그는 아무리 이러쿵 저러쿵 해도 어쩔수 없는 하루키구나 라구. 다시한번 무릎을 치며 탁. 할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말구.
그는 아쉬워 하며 머리를 감쌌고 나는 저런 개발, 하고 대뜸 욕했다. 그러나 나는 동네축구, 군대축구, 대학 체육대회 축구, 직장 야유회 축구 등등 내가 뛰었던 갖은 축구경기에서 저만한 찬스 위치에서 공을 제대로 트래핑 해본적조차 없었다.
순간적으로 보기에 어수룩하고 몹시 허접한 것들에 대해서 예전에는 '그러려면 집어치워라' 정도로만 생각해왔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 분야에서 최소한 나보다는 낫ㄴ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나는 그들 모두가 그 분야에서는 훌륭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p97
나는 원래 한눈에 알아본다. 지금 행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사랑이란, 그 순간 행복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지금 사랑 때문에 아픈데 그 사랑을 지키겠노라고, 믿겠노라고 생각하는 순간 눈앞에서 행복이 다운되어 버린다. 세상에 지금 당장 행복하지 않은데 뭣 때문에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 귀찮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한 걸 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그런 주제의식을 가지고 여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사실이야. 난 실제로 그런걸 체험했으나까. 고작 충치 하나 때문에, 뭉친 어깨 근육 때문에 모든 아름다운 비전과 울림이 휙 사라져 버려. 사람의 육체란 이렇게 나약하고 물러. 육체란 놈은 무섭게 복잡한 시스템으로 되어있고, 사소한 것에도 자주 상처를 입어. 그리고 한번 고장이 나 버리면 대부분 회복이 어려워. 충치나 뭉친 근육쯤은 아마도 쉽게 고칠 수 있을 테지만, 못 고치는 것도 잔뜩 있지. 그렇게 한 치 앞도 모르는 허약한 기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재능에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의미가 있겠어?"
"물론 재능이란 덧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걸 최후의 순간까지 지탱하는 인간은 거의 없을지도 모르고요. 그러나거기서 태어나는 것은 가끔씩 정신의 위대한 도약을 이루어 냅니다. 개인을 넘어 보편적인, 거의 독립적인 현상으로서."
3.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4. 소설가로 산다는 것 - 김훈 외 지음
5. 이원식 씨의 타격 폼 - 박상 지음
6. 잡설품 - 박상륭 지음
7. 잽 - 김언수 지음
8.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김용규 지음
"이게 잽이라는거다. 어깨와 주먹에 힘을 빼고, 툭툭, 주먹으로 치는게 아니라 냉장고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빨리 꺼내온다는 느낌으로 팔을 뻗는거야. 툭툭, 스텝을 밟으면서 기계적이고 반복적으로, 툭툭, 발의 움직임을 따라 몸에 리듬을 타면서, 툭툭, 상대가 짜증이 나도록, 상대가 초조해지도록, 상대의 얼굴에서 서서히 분노가 차오르도록 툭툭, 계속해서 날리는 거야. 그럼 알아서 무너져. 잽으로 다 무너뜨린 다음 한 방에 보내는 거지. 해봐. "
CPU는 AMD Athlon™ II Neo N36L processor (1.3 GHz, 15W, 2MB) 이다
대충 SU9400 과 비슷하며 BMT는 800점대를 기록함
이 다음 모델인 N40L 은 967점 정도- 가장 최근에 나온 N54L은 1187 점. 확실히 뭘 하기엔 굉장히 부족한 CPU 성능임..
● Storage (LFF / SFF)
bay 나님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Bay
Disk Size
RAID
SFF Area
SSD 128G
None
Segate 320G
Segate 320G
None
HP 80G
None
LFF Area
Segate 750G (RAID 0)
Segate 750G (RAID 0)
Segate 750G (RAID 0)
Segate 3T
RAID0 + backup
나님이 가난해서, 근본없는 HDD들. 주로 RAID 5 탈락자들임
eSATA
후면 eSATA를 놀리기 뭐하여, 그동안 묵혀두었던 도킹스테이션을 이용하여 임시영역으로 사용중.
원래는 1G ECC RAM과 250G HDD가 기본 장착이지만 난 아무것도 없는 모델로 구입- 일반 RAM인 PC3-10600 으로 설치해도 문제없이 구성가능함. Samsung PC3-10600 4G * 2 EA 장착
● PCI slot
Express slot은 x16, x1 을 지원.
slot
Add on
x16
HP smart array p212 (8087/8088 port)
x1
NIC IPTime PX1000 (Realtek)
지인의 도움으로 HP smart array p212 를 대여받아 SFF * 4EA로 일단 구성하여 사용중. P212는 P410으로 대체 예정이며, P410 구성시 SFF * 5EA (JBOD??) / LFF * 3EA (Stripe) 구성 예정임.
● Network
기본적으로 on board 되어 있는 NC107i 에서 1GbE를 지원, 그러나 ISP자체에서 100Mbps 밖에 지원하지 않으므로 크게 성능을 느끼지 못하고 있음. jumbo frame은 미지원.
공유기는 Iptime N704M 사용. 해당 n36l에서 torrent를 켜거나 network에 약간이라도 부하가 가려는듯한 패킷 냄새가 나면 공유기 자체가 살짝 맛이 가서 (붕붕도 아니고 ㅡㅡ) NIC IPTime PX1000 (Realtek) 를 추가로 장착하고 다음과 같이 구성변경 함.
n36l을 DMZ로 설정해 놓은,
torrent만 켜면 맛이가는 기존구성 변경후 N36L을 직접 몸빵한 현 구성
나머지는 하나도 생각 나지 않고, 전시회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하나의 토르소.. 벨베데레의 토르소(Torso Belvedere) 되겠다.
전시관에서 차마 찍지 못하였기때문에.. 사진은 퍼ㅋ옴ㅋ
내가본건 아쉽게도 복제품이었지만, 왼쪽가슴에 붉은 멍(?) 까지 정확하게 재현되어 있었다.
라오콘 군상도 인상깊었지만, 벨베데레의 토르소는 머릿속에서 박혀서 나오질 않았다. 교황(?)이 미켈란젤로에게 복구를 요청했지만, 지금 그대로도 완벽하다. 라고 말한 그 물건이다.
도슨트 말로는 "라오콘 군상의 오른팔은 내가 복구할수 있으나, 벨베데레의 토르소는 손을 댈수 없다" 라고 말하였다고 하는데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ㅋㅋ
르네상스의 표본이자 원형이 된 토르소라고 한다.
역시 도슨트의 말로는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의 원형이자 피에타상을 만든 미켈란젤로 역시 영감을 많이 받은. 굉장한 prototype - 오히려 토르소이기 때문에 그 알수 없는 부분들이 상상력을 크게 더하는듯 싶다.
해당 인물은 예전엔 해당 토르소가 깔고 앉아있는 사자가죽 때문에 헤라클레스로 짐작이 되었으나 최종은 트로이 전쟁의 영웅중 한명인 아이아스 장군[각주:1](소포클레스)이라는 설이 요즘은~ 유력한거 같다.(사람일은 알수가 없자나~~)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동시대의 해당 상이 1900년대에 발견이 되었다나 어쨌다나!!!!!!!
트로이 전쟁후 아이아스 장군이 만랩으로 lv.1의 양때를 학살하신후 고뇌하는 그 포즈 되겠다. 도슨트 말로는 장군을 비웃던 자기 부하라고 하던데 (내가 알기론 적군), 자기 부하인지, 적군인지, 오디세우스의 부하인지.. 어떤게 맞는거야 ㅡ_-... 여튼, 트로이는 다시 읽어보도록 하고..
무튼 보면 볼수록 압도되어지는 기분이 드는데..헐.. 아이아스 형......
특히 허벅다리와 무릎으로 이어지는 근육과 대흉근에서 전거근으로 이어지는 생김새가, 그 느낌이 보면 볼수록 만지고 싶다랄까..음...... *-_-*
무튼.
전시회장에 있는 벨베데레의 토르소는 뒷모습을 보기 힘들게 배치를 해놨는데.. (배치도 그러거니와 조명자체가 앞 쪽만을 너무 부각시켰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본 사진도 굉장했다. (등..등짝을 보자!)
언젠가 바티칸에 갈날이 있으면, 이 두눈으로 가장 보고싶은 조각물.
뱀다리.. 피에타상은 조그만 축소판으로 팔던데 벨베데레의 토르소는 왜 안파는지!!!!
뱀다리2 .. 2013년 목표를 벨베데레의 토르소 몸으로 만들기.. 이런거 하면 매장당하겠지?!
aias또는 ajax 라고 하는데 님들이 생각하는 Ajax(Asynchronous JavaScript and XML) 이거임.. [본문으로]
‘그녀를 위해서라면 마법을 포기할 수도 있어.’ 한순간이나마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는지 이내 깨달았다. 사랑은 이런 식의 포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서로에게 자신의 길을 가도록 허락한다. 그 때문에 서로가 갈라지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 우리가 함께 본 저녁노을과 같은 것은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어.” 마법사는 말을 이었다. “비가 창문을 두드리며 내리는 오후를, 잠든 아이의 평온함을,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는 마법과도 같은 순간을 소유할 수 없듯이. 아무도 대지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소유할 수 없지만, 그것을 알고 사랑할 수는 있어. 신께서 인간에게 당신 모습을 드러내시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순간들을 통해서지. 우리는 태양의 주인도, 오후의 주인도, 파도의 우리는 태양의 주인도, 오후의 주인도, 파도의 주인도, 심지어 신께서 보여주시는 환영의 주인도 될 수 없어.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야."
정말 무지한 것은 모르는 것이 아니다. 주입된 생각을 자신의 생각이라고 맹신하는 자야말로 무지하다. “별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누가 자네에게
가르쳐주었는지 모르지만, 별은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추한 것도 아니고, 그냥 별일 뿐이네. 사랑하는 자에게 별은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배고픈
자에게 별은 쌀로 보일 수도 있지 않겠나.”
순정이 있었고, 충직했고, 보기에 따라선 쌍꺼풀도 남달리 이뻤다. 그러나, 서지우는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여전히 ‘멍청’했다. 감수성이란 번개가 번쩍하는 찰나, 확 들어오는 그 세계를 단숨에 이해하는 섬광 같은 것일진대, 그에겐
그게 없었다.
향기 나는 너의 머릿결이 어깨, 이마를 먼저 비질하고 지나가자, 온화한 선지자처럼, 이번엔 네 가슴결이, 어깨를 쓱
스치고 머리께로 올라왔다. 이제 두 달만 지나면 열일곱 살이 될 가슴이었다. 그것은 넘치지 않고 조금도 모자라지 않는, 남해의 태양빛이 잘 익힌
오렌지 같았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자꾸 황금빛 오렌지의 원융한 테두리가 보이고, 바다로 내뻗은 팥알 같은 유두와 보라색 젖꽃판이 보였다.
그것들은 마치, 네 손등 위, 울근불근하던 피돌기처럼, 쏜살같이 내 시야로 진군해 들어왔다. 그리고 차츰 팽창했다. 어깨에 닿았던 가슴이, 네가
위치를 바꾸는 데 따라 머리, 광대뼈를 건들고, 턱을 살짝 눌렀다. 나는 숨을 멈추었다. 손끝은 껍질을 벗겨내고 싶어 거의 미칠 지경이었으며,
입술은 오렌지 단물을 베어물고 싶어 지옥문처럼 굳었다. 향기가 네 머리칼, 가슴에서 났다. 쥐스킨트 소설 『향수』에서 완성된, 세상의 모든
시간을 해방시키는 ‘처녀의 향기’였다.
생은 결과적으로 내게 아무런 위로도 주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조심했고, 억눌러 견디었다.
시가 감정의 분출을 받아쓰는 것이라고 여긴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감정은, 일종의 얼룩에 불과했다. 싸구려 얼룩들을 지워야 맑은 유리 너머로
참된 세계 구조가 보일 거라는 게 나의 시론이었다. 그것을 ‘내 시론’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내 것이었나.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면서, 나는 다만 전투적으로 나를 억압하고 산 것뿐이었다.
이적요 시인이 본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란 은교로부터 나오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단지 젊음이 내쏘는 광채였던 것이다. 소녀는 ‘빛’이고, 시인은 늙었으니 ‘그림자’였다. 단지 그게
전부였다.
늙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따라서
노인의 욕망도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 라고 또 나는 말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카페 안의 젊은 그들과 나 사이엔 전쟁에서의 전선보다 더 삼엄한
경계선이 쳐져 있었다. 잔인한 금줄이었다. 세대 간의 단층을 왜 모르겠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단층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하지만 내가
저들과 친구로 지내자고 요구한 바 없고, 내가 저들의 자리에 끼어 앉으려 한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한 지붕 아래 있는 것만도 참지 못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세계 어디에, 저렇게 또래들만 모여 앉아 늙은이는 ‘무조건 나가달라’고 말하는 곳이 있을까.
어떤 경우,
사실적이고 생생한 묘사는 저주받은 자들이 하는 짓이다. 서지우는 내가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방법까지 모두 동원해 철저히 그애를 갖고 놀았다.
그렇다고 나는 믿었다. 나의 집, 서재, 침대 위였다. 나는 사디스트도 아니고 마조히스트도 아니다. 그 순간 내가 본 모든 것을 더이상 리얼하게
묘사한다는 것은 잔인한 사실주의자들이 벌이는 극단적인 가학이나 피학일 것이다. 내가 어찌 초목 옆에서 살아야 마땅한 은교의 희디흰 대지가 나의
서재, 나의 침대에서 서지우라는 ‘짐승’에 의해 속속들이 해체되고 망가지고 파먹히는 것을 여기에 다 낱낱이 묘사할 수 있겠는가.
모든 나의 괴로움 사이 죽음과 나 사이 내 절망과 살아가는 이유 사이에는 부정不正과 용서할 수 없는 인류의 불행이
있고 내 분노가 있다
―P. 엘뤼아르(Éluard), 「사랑의 힘에 대하여」에서
불에 타고 난 노트의 재를 그녀가
울면서 화장실 변기 속에 주워넣고 있었다. “할, 할아부지…… 아무 죄…… 없어요! 진짜로…… 시……인이었어요!” 그녀가 검댕이 잔뜩 묻은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봐요, 변호사님. 나하고보다…… 할아부지하고 서선생님하고…… 더 친하다고 그랬잖아요!” 눈물과 검댕이가 범벅된
그녀의 얼굴은 애련했다. “이거, 태운 게…… 죄라면요, 처벌받을게요. 저는요, 바보같이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녀가 이윽고 화장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할……아부지가…… 나를요, 이렇게…… 갖고 싶어하는지도 몰랐다구요. 이까짓 게, 뭐라구요.”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쳤다.
“뭐예요…… 바보같이, 자기 혼자서……” 나는 그녀를 안아 일으켰다. 그녀의 손에는 노트를 묶도록 된 검정 끈만 달랑 들려 있었다. 나는 얼결에
타다 만 그 끈을 받았다. “할아부지요, 몰스킨에다…… 만년필로 썼네요. 자기만 멋 내구……” 웃으려고 애를 썼지만 그녀는 얼른 웃지 못했다.
그 대신 그칠 듯했던 울음이 다시 흘러나왔다. 검댕이 섞인 검은 눈물이 일찍이 이적요 시인이 그녀에게 사입혔던 노란 셔츠에 뚝뚝 떨어졌다.
“몰스킨이라니?” 내가 화제를 돌리려고 짐짓 반문했고, 그녀가 나의 아둔한 반문에 비로소 울다 말고 킥킥, 했다.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생각하기 전에는 말이다. 특히 이렇게 목적도 없이 아무생각도 없이 글을쓰려고 뭔가. 음.. 하고 하기 전에는. 굳이 일기장을 볼필요가 없다. 그러니깐 군대에서 썼던 일기장 같은것 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러한 시기를 거친다.. 애타고 바둥대고 환경은 절제 되어 있는데 혼자만 홀로 불탈때.
그리고 그게 조금은 잘못된 방향으로 하염없이 가고 있는데 나는 정말 무기력한 시간들 말이다. 군대 이후로 무엇이 변하였는가 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라고도 할수 있고 많은것이 변했다.. 라고도 할수 있다.
나는 일단 정민기를 안다. 아 좋다. 좋은 일이다. 군대에서 얻은 가장 값비싼 선물이다. 그는 다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그는 여전히 변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허브에서 라우터로 혹은 게이트웨이로 말이지. 좋다. 그는 좋다. 그의 어떤부분이 모가나고 욕을 먹는다 해도 그는 좋은거다. 내가 그를 받아들였고, 그 역시 나를 일부 받아들였음에 가능한 일이다. 좋다.
뱃살. 뱃살이 여전하다. 실은 더 쪘다. 살은. 왜 나를.
가만두지 않는걸까.
자고 있을때 와서 나를 괴롭히는걸까.. 왜..? 여전한것중에 하나다.
책. 나는 여전히 책을 읽는다. 군대에 있어서보단 양과 질이 많이 줄었지만. 생각하는것도 줄고 써내려가는 양도 줄었지만, 나는 여전히 읽는다. 읽는게 즐겁다. 나는 하나의 입과 두가지 귀중에서 고르라 하면, 세개의 귀와 입은 택하지 않을 생각이다. 여전히 읽고, 쓰는건 좋다. 내가 쓰는게 아니라. 나라는 어떠한 매개체로 인해 전혀 다른성질의 결과물이 나온다는게 가끔은 경이로울때가 있다. 전적으로 스스로만. 경이롭다.
박민규. 그는 왜 신작을 내지 않는가. 씁슬할 정도다. 나아~쁜 사람.
그때보단 조금 많이 벌고 있다. 그뿐이다.
그리고 옆에 나를 아주 많이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 이건 그뿐이 아니라. 너무 좋다. 그러니까 전적으로 너.무.좋.다. 라고 쓸수 밖에 없는건 어떤 거대 담론을 만났을때 으레 겁을 집어 먹거나 사람이 경직되는 성격과 같다. 나는 나를. 너.무.좋.아. 하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 항상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이다.
나이가 늘었다. 이제 내년이면 서른이다아- 광석형의 노래가 어울릴만한 나이가 되어감에- 행여- 나이에 맞지 않는 삶과 행동양식에 반성을 한다. 참.. 반성을 해도 나아지지 않음에 반성을 하고. 반성으로 끝나는 삶을 되돌아 반성한다. 매우 나쁜일이 아닐수 없다.
나쁘다.
이제는 잠을 자야겠다. 어디서 부터 풀어야할지 모르는 삶의 실타래를 너무도 많이 방치해두었던 시간이 나를 괴롭힌다.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무엇을 한다는것 자체가 이상한 일인거겠지.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은 그런 게 아니라고. 강하면 부러진다고. 나도 편히 사는법을 안다. 좋은게 좋은 거라는 의미도 안다. 이러한 합리적인 이성은 실패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동시에 나를 꿈에서도 떼어 놓으려고 한다. 나는 사랑하는 가슴으로 불가능한 꿈을 꾸면서 살겠다. 그 가슴은 영원히 상처받지 않고, 신의 보살핌을 받는다고 주문을 외우면서 이성을 넘어 가슴을 따르고 가슴으로 판단하겠다. 깨지고 부서지더라도 충동을 믿고 도전하겠다. 강자에게는 당당함으로, 약자에게는 겸손함으로 세상에 보탬이 되겠다. 이상과 정의 그리고 진실을 위해서는 그 어떤 타협도 하지 않겠다.. 에필로그
삼성이랑 싸운다. 교회랑 싸운다. 검경 대검 거칠것이 없다. 그러면서 부끄럽다 한다. 나는 삼성. 교회. 대검. 검경 부러운데.
부러우면 지는건데 분명 부럽다. 아직도 생각해야할것과 고민해야될것이. 20대에서 끝나지 않고 29 그리고 30대로 이어진다.
얼마전에 지인과 정치이야기를 했다. 참나원. 정치이야기는 왠만해선 안하는데.. 그래서 말을 하다가 "그래서 넌 지지하는게 누군데?" 원참나. 그나마 가까운 심상정 생각이 나서 그녀를 이야기 했다. 그는 그사람이 싫다 하였다. 너무 데모를 많이 하고 정권심판론 어쩌구 이야기를 한다. 나원참.
잠시 일을 멈춘다.. 톡톡 거리던 마우스도 잠시 내려놓는다..
저녁밥 먹고 와서 하던 일을 한순간에 멈추었다. 아니 멈추어짐을 당하였다.
원인모를 에러로 파워포인트는 응답없음을 내보내었다.
그 응답없음에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같이 응답없음으로 응대한다.
시간이 지나도 살아날줄을 모른다. 지나간 시간때 피웠던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그 이후로 한번도 피우지 않았지만..
문득 예전 사람들이 보고 싶다. 나의 스물세살 스물두살 스물한살.
그때의 그 사람들은 다 어디 간걸까.
나도 그들을 잊고 살았듯이 그들도 나를 잊고 영화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손톱을 깎거나 책을 보거나 수다를 떨거나 거리를 거닐거나 밥을 먹거나 애인을 만나거나 버스를 타거나 혹은. 멍 때린다거나.
"아버지를 뛰어넘기 위한 아들의 모습" 은 종종 다른 모습으로 비추어 지곤한다. 서양이나 미드에서는 개인적인 컴플렉스의 극복으로 보여지는 반면에 국내 드라마나 우리의 정서상에는 가끔 인간대 인간으로써의 예의 정도로 비추어 지는경우가 많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고 할수 있다. 어떠한 한 인간으로서의 완성도를 따진다는 기준에서는 말이다. 덧붙여 부모님의 욕망의 투영이 일어나고 아이도 자연스레 그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수준이 되면, 나중에 어떤 일정한 시점이 되었을때 그 개인적 허무함은 극에 달한다. 뭔가 열씸히 쫓아 왔지만 아무것도 느낄수도 만질수도 없는 상태, 결코 타인의 욕망은 자신의 욕망이 되진 못한다. 저 부분이 미묘하게 교집합을 이루는경우가 종종 있는듯함.